(자전적 에세이) 현대인에게 필요한 절제의 훈련- 온갖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법 (feat. 세상에서 가장 의지력이 강한 남자), 그가 17분 4초동안 물속에서 숨을 찾던 방법 & 생활의 고집!
일상 2021. 2. 22. 10:47아래 영상은 온갖 극한 기행에 도전하던 마술사의 이야기를 다룬다.
온갖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법 (feat. 세상에서 가장 의지력이 강한 남자)How I held my breath for 17 minutes | David Blaine
David Blaine: 내가 어떻게 17분간 숨을 참았는가
마술사로서 저는, 사람들로 하여금 집중하고 생각하도록 하는 이미지를 창조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는 의사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그런 일들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저는 뉴욕시에서 산채로 관에 들어간 채 묻혔는데요, 1999년 4월에 1주일동안 산채로 묻혔습니다. 저는 물 빼곤 아무것도 먹지않고 거기서 지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제가 이런 것들을 더 많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결심하게 할 만큼 재미있게 끝났습니다. 그 다음 일은 뉴욕시에서 제 자신을 얼음덩이에 넣고 3 일 밤낮으로 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은 제가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어려웠습니다. 그 다음에는, 100피트의 기둥 위에서 36시간동안 서 있었습니다. 매우 심하게 환각을 느꼈는데요, 제 뒤에 있는 빌딩이 큰 동물 머리처럼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1987년에는 얼음 사이로 떨어져 강 아래에 같힌 한 소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소년는 숨을 쉬지 않고 45분동안 물 아래 있었습니다. 구조대원들이 도착했을 때 그들은 그 소년을 소생시켰고, 뇌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었습니다. 소년의 심부온도(core temperature)는 77도(섭씨 25도)까지 떨어졌습니다. 마술사로서, 저는 모든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이 무언가를 해내었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할 수 있을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소년이 그렇게 오랫동안 호흡 없이 살아남았다면 저 역시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명한 신경외과 의사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호흡 없이 견디는 것이 얼마나 오랫동안 가능한지 물어보았습니다. 의사는 6분이 넘으면 저산소로 인한 뇌손상 같은 심각한 문제가 생길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을 도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원칙적으로요. (웃음) 저의 첫번째 시도에서, 저는 뭔가 비슷한 것을 할 수 있을것이라 생각해서 물탱크를 만들고 거기에 얼음과 아주 차가운 물을 채웠습니다. 그리고 저의 심부온도(core temperature)가 떨어지기 시작할 것이라 바라며 그 물탱크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몸을 덜덜 떨었습니다. 숨을 참는 첫번째 시도에서 1분조차 견디지 못했습니다. 저는 일이 완전히 잘못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의사 친구에게 자문을 구하러 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고 물었습니다. "난 숨을 정말 오랫동안 참고 싶어. 어덯게 하면 될까?" 친구가 말했죠, "David, 넌 마술사잖아, 숨을 쉬지 않는 장면을 연출해, 그게 더 쉬울꺼야." (웃음) 그래서, 그는 수중호흡기를 만들자는 생각을 가지고 왔는데요, Home Depot에서 파는 그냥 튜브에다가 접착테이프로 풍선을 붙인 수중호흡기였습니다. 그 친구는 이걸 제 몸속에 집어넣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제 몸안에서 공기를 순환시키고 다시 숨을 쉴수 있게 한다는 것이죠. 보기에는 좀 힘들지만 (도전을 위한) 시도입니다. 말끔하게 안되네요. (웃음)
저는 정말 말도 안되는 생각들을 했습니다. 정말로 실행하기 위해서요. (웃음) 의사들이 뇌사라고 여기는 그 지점을 넘어서 숨을 참으려 하기 위해서지요. 그래서, 저는 진주를 채취하는 잠수부들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들은 한번 숨을 쉬고 4분간 물 속에 있잖아요. 그리고 제가 그들을 연구할 때, 저는 프리다이빙의 세계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이제껏 발견한 것들 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프리다이빙에는 여러가지 면이 있습니다. 사람이 얼마나 깊이 잠수할 수 있는가에 관한 깊이 기록이 있고, 그리고 정적인 무호흡(static apnea)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 장소에서 움직임 없이 가능한 숨을 오래 참는 것입니다. 제가 한가지 배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숨을 참을때 절대로 움직이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죠. 그리고 산소를 줄어들게 하고 혈액 속의 이산화탄소를 증가시킵니다. 절대로 움직이면 안된다는 걸 배웠지요. 그리고 저의 심박동수(heart rate)를 낮추는 법도 배웠습니다. 저는 완벽히 고요하고 긴장을 푼 상태로 있어야 하고 제가 저의 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몸을 컨트롤 한다고 생각해야 했죠. 그리고 나서 제거(purge)하는 방법을 익혔습니다. '제거'은 기본적으로 과호흡입니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죠... 이렇게 하면, 머리가 어질어질하고, 얼얼해 집니다. 그리고 몸속의 이산화탄소를 없애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숨을 참을때 엄청나게 쉬워집니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으마셔야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이 상태로 숨을 참고 긴장을 풀고, 공기가 밖으로 나가게 하면 안됩니다. 고통스럽지만 숨을 참고 긴장을 풉니다...
몇 달 동안 매일 아침마다 제가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한 것이 숨 참기 였습니다. 52분을 넘기기 위해서요. 저는 44분간 숨을 참았습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제가 이산화탄소를 제거했다는 뜻이죠. 몇 분간 숨을 쉬기 정말 어려웠습니다. 직후에는 5분 30초 정도 숨을 참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몇 분간 호흡하였고, 제가 할수 있는 만컴 열심히 '제거'를해서 직후에는 다시 5분 30초를 참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과정을 한번에 8번 반복하였습니다. 52분이 넘을 동안 8번의 호흡만 하는 것이죠. 이것이 끝날 때는 뇌가 완전히 타버리는거 같죠. 어지럽게 걸어다니는 듯한 느낌이 오고 끔찍한 두통이 생기게 되죠. 제가 그 것을 할 때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게 되죠.
저는 세계기록 보유자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Tim Sietas죠. 이 사람의 체구는 숨을 참기에 완벽해요. 6.4피트에 160파운드이고,(196cm에 72kg) 총 폐활량은 평균적인 사람의 2배에 이릅니다. 저는 6.1피트(186cm)이면서 뚱뚱하지요. 우리는 뼈대가 굵다고 말합니다. (웃음) 저는 3개월 후에 50파운드(22kg)를 빼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먹는 모든 것들을 약으로 생각했습니다. 모든 음식들은 정확하게 영양가를 고려했습니다. 저는 하루종일 정말 적게 조절된 양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몸에 적응하기 시작했죠. 개인마다 결과는 다양합니다. (웃음)
저는 방송 1주일 전에 구(球)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모든것이 예정처럼 진행 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록을 위한 저의 숨참기 시도 2일전에 TV 스페셜의 프로듀서가 생각하기를 누군가가 숨을 참고 거의 물에 잠긴 꼴을 지켜보는 것은 TV에선 너무 지루하다는 것이죠. (웃음) 그래서 저는 수갑을 추가해야 했습니다. 숨을 참는 동안 거기서 탈출하기 위해서죠. 이것은 치명적인 실수였습니다. 움직임 때문에 산소를 낭비했지요. 그래서 7분부터 저는 끔찍한 경련을 겪었습니다. 7분 8초부터 앞이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7분 30초부터 그들은 저를 꺼냈다가 다시 집어넣어야 했습니다. 저는 모든 단계를 실패했습니다. (웃음)
예전 인터넷도 전화도 없던 시대엔.. 사람들은 하루하루의 유의미함과 재미를 찾기 위하여 수고롭게 나가서 돌아다녔다. 쓸데없이 한강이라도 1~2시간 산책하며, 둑에서 멍하니 강물이라도 쳐다보며 시를 쓰거나, 묵상하는 사람들이 예전엔 꽤 많았던 것이다.
친구라도 만날려면 요즘처럼 카톡이 아니라, 친구네 집에 찾아가 "놀자!"를 외치며 문을 두드려야 했던 것이다.
TV가 없는 자취방에서 피곤해도, 책이라도 읽지 않는다면.. 하루종일 집안에 누워있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바뀌며, 사람의 생활패턴은 많이 바뀌었다.
필자의 학창시절엔? 핸드폰도 인터넷도 없던 시대.. 으례 주말이면 한강에 가서, 새벽2~3시까지 동네친구들과 농구를 하면서 운동으로 심심함을 극복했지만...
유튜브와 인터넷과 내 손에 스마트폰이 세상과 연결되는 재미와 자극을 주게 되어, 손하나 깜짝하지 않고 드러누워 재미와 자극을 쫒는다. 굳이 집밖을 나가지 않아도 된다.
당장에 찾을수 있는 재미와 자극이 큰만큼, 오히려 절제와 인내를 통해 얻던 깊은 자신의 중심을 느끼는 삶은 사라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만한 그런 고상한 느낌을 얻기가 힘든 시대가 되었다.
어릴적 필자는 수행하듯 살았기 때문에, 그런 차이를 잘 느낀다.
단지 나이가 들어서 감성과 행동이 달라져 그렇게 변화한 것일까 생각도 해보지만, 너무나 삶의 양식이 빠르게 달라졌던 시대가 낳은 변화적 측면도 큰 것이다.
인터넷상의 수많은 논쟁과 머리만이 붕뜬채 전파속에 갇혀 세계탐험을 하다보면..
점점 충동적이 되고, 사나워지게 된다.
요즘의 시대, 절제와 인내가 아름답게 여겨지는 이유이다!
어릴적엔 아침 점심으로 방쓸기, 걸레질까지 하고 살았는데..
(특히..바이오 리듬 파괴의 주범인 유튜브 영상 제작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나 싶다...)
문득 요즘은 큰 일을 한다는 핑계로, 지나치게 방을 창고수준으로 생각하며,
널브러지게 살긴 했구나!
그때 치우고 설거지하고 잘까하다 문득 건너뛰고 만게..
며칠전 먹은 고깃상을 치우지를 않고 그대로 방치했으니..나~원!!
가장 처음 영상에선 방청소부터 절제를 되찾는 하나의 방편으로 이야기하지만,
다시 일상의 소소한 수행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구나아~!!!!
어지러운 방이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고, 그냥 그럭저럭 편하게 느껴지는 것도 한 이유겠지만..
어릴적 축농증으로 무리하게 병원을 오가다가 점막이 손상되어 후각이 약한 것과, 그래도 창문은 항시 열어놓고 살아서, 환기적 측면에서 그나마 낳아서인지도..
당시 필자의 의지가 아니라, 뭣하면 병원부터 찾는 집안 분위기속, 좀만 머리가 아프면 약국부타 찾곤했던 집안의 분위기속 강권으로 동네 병원에 2~3일에 한번꼴로 다니며, 매번 코에서 흡입기로 콧물을 빨아낸다며 집에 돌아올때마다 코에서 피가 날 정도였는데.. 그 이후로 어떤 코점막의 기능이 손상된건지 코딱지가 안생기게 되었고, 코의 온도조절 센서가 약해진 탓인가?
성년기에도 환절기마다 코가 약해 코감기등이 쉽게 걸리게 되었고, 평생 병원이라면 학을 떼는 주의자가 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자연면역력이 올라간 탓인가? 거의 감기에 걸리지 않게 되었다.
단지 환절기때 콧물이 심하게 날때가 있기는 한편이다.
당사자인 필자는 어릴적 병원을 가면서 오히려 악화된다는 느낌을 받았고, 충분히 합리적 사고라 생각하여 어느순간 병원을 안가야겠다고 말을 하기도 했지만, 군대식 집안에서 서열이 제일 하위였는지라, 그렇게 말했을때, 니가 뭘 아냐며?
날라온 싸대기와 아구창을 맞고 결국 병원을 1~2년 더가고, 성년이 되어서도 코만큼은 코에 장애가 생겼기 때문에, 결국 가장 중요한 문제들과 올바름을 판단하는 것에 있어서는, 최종적으로 내 직관과 판단으로 결정하는 것이 옳다는 것을 뼈로 깨달은 체험이었고, 그런 부분의 의견결정의 주권을 남에게 내어주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드센 환경속에서 남들에 비해서 꽤 주체적인 인간으로 자란 편이다.
타인의 강권에 인해서 내 삶이 손해를 보거나, 억울한 경우는 다시는 겪지 않으리란 생각하였으나,
지나치게 주변의 사람들이 고집이 세거나, 그 고집을 자신의 삶이 아닌, 남에게 관철시키기 위해 쓰는 것을 보면서.. 내 등치가 커지면서는 그러한 고집들을 모두 거절하기 시작했고,,
이런 환경탓인지 타인에 대해 쉽게 의존하지 않고, 내 판단에 한번 아니라고 생각된, 그루밍이나 세뇌적 부분에서는 체질이라고 할만큼 매우 강한 편이다!
때때로 유튜브상에서도 누군가는 필자가 고집이 센편이라고 말하나 한가지는 알아야 한다.
그런 말을 하는 그 타인들의 고집은, 남의 삶에 쉽사리 침범하고, 바꾸려고 하거나 흔들려고 하는데 참 쉽게도 고집을 내지만, 필자의 고집은 남의 삶을 흔들거나 조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그런 고집을 부릴때, 그것을 간단히 거부할때만 고집을 부린다는 것을..!
타인의 삶을 통제하려 하면 그만큼 민폐가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실 남의 삶에 무심하다.
(내 삶에 대해서도 무심하다는게 문제긴 하지만..)
이런 성향 탓인지.. 남을 숭배하거나, 팬클럽 문화를 가지거나 하는 일엔 관심이 없고, 사람의 우상을 두지 않는다.
그래서 공익적 활동을 하면서도 단 1원도 스폰을 받지 않았다.
순수하게 스폰을 주는 사람은 없고, 거기엔 어떤 바램과 기대, 댓가가 있다. 그만큼 오직 옳고, 그름을 내리는 판단에 이해상충이 침범하게 되고, 유착이 생긴다.
유튜브에서 한번 스폰을 받기 시작한 사람들은 점점 줏대가 없어진다. 구독자의 눈치를 살피게 되고, 그들이 잘못될때는 훈계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으로 생각하며 줏대없이 스폰을 가장 많이 하는 대주주의 영향력을 생각하게 된다.
대화를 하다가 처음엔 생각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으나, 뒤늦게 보면 뒤통수를 치듯,
매우 다르구나 느낄때가 있고,
결과적으로 이런 사람들에게 스폰을 받으면 참 휘말렸겠구나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이다.
20세때 용돈을 30만원씩 받다가, 대학친구들과 매일 술을 마시며 너무 빨리 써서, 3주만에 용돈을 더 달라고 하다가 욕을 테배기로 먹고, 그 뒤로 영원히 집에서 손을 벌리지 않기로 결심하고, 1주일을 라면 반쪽씩 끓여 밥을 말아먹고 2천원으로 버티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인생에 처음 컴퓨터를 살때, 10일동안 미군기지에 가서 아파트 옥상에 시멘트를 나르며, 60만원을 벌어서 60만원 가까운 중고컴퓨터를 샀다. 집에서 레포트를 써야 했기 때문에..!
영하 10도 겨울인데, 반팔을 입고 걸레처럼 옷이 땀으로 젖어, 중간중간 벗어 물기를 쥐어짜고 일을 했는데 정신이 비몽사몽해서 난간대가 없는 옥상계단에서 눈을 반쯤 걸은채 터벅터벅 헛발을 내밀다가 보니, 한발이 계단이 아닌 허공에 있어 개죽을 뻔했던적 있던 것이다.
필자가 성년 무렵에도 집에서 1500만원짜리 원룸하나를 전세로 주겠다며, 니 재산으로 하라고 했지만 거절했다. 거기엔 그것을 주는 대신에 관철하고자 하는 조건과 내 삶에 개입하려고 하는 카드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그냥 자가로 빚을 다 갚고 살테니 단 1원도 넣지 말라고 한 것이다!
그 때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면, 필자는 지금 일식집 주방보조 조리사의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필자는 타인의 삶에 침범하거나 관여하는 것을 싫어한다.
필자가 도달한 사랑은? 그런 사람들을 보면 좋아보이기도 하고,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따뜻한 온실속에 화초처럼 자라서, 도달한 체질의 사랑이 아니다.
집이 파산한김에 자력으로 대학을 다니면서, 대학시절 월 10만원짜리 보일러 고장난 시골 대문옆 딸린 자취방에 살면서, 영하 10도 씻기 위해, 시골동네를 전력질주하고 찬물샤워를 하는게 일상이었고, 아침이 되면 입에서 김이 나오는 방에서 벌떡 일어나 얼은 발로 걸으며, 따뜻한 물 샤워를 하기 위해 대학교에 가서 학생회관 샤워를 하곤 했고,
공부가 좋아서가 아니라, 집안에서 노느니 추워서, 대학도서관과 오락실 카운터가 훨씬 따뜻해서 최대한 밍기적 시간을 하루 대부분 보내며 따뜻해서 공부를 하다보니 장학금을 타먹기도 했던 것이다.
지금은 매달부은 연금처럼 살이찌고 있지만, 철인 3종 같던 당시 달력일지의 대학시절만 해도 수업과 평일은 5~6시간, 주말엔 12~14시간 야간알바를 병행하며, 금요일 수업이 오후 6시 끝나고, 바로 아르바이를 시작해, 매주마다 가볍게 24시간씩 안자는 주말을 1년 반 가까이 보냈다.
집세, 토익시험비, 식비, 학비를 충당하기위해.. 하루 5~6시간을 잠자는 것외엔 집에 머물일이 거의 없었고, 필자는 비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인생에서 별명이 바른생활 사나이로 불렸던 만큼, 가장 부지런한 시절이기도 했다.
필자가 졸업이후, 갑자기 대학등록금 제한이 풀려, 2배가 인상됐고, 지금은 너무 많이 올랐지만, 당시 국립대 생활은 아르바이트로 충당이 가능하긴 했던 것이다!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은 보통 학생보다 많았지만, 생계에 대부분 써버리고 그리고도 절약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돈이 많지 않아, 천원짜리 콜라를 사고, 빵다섯개가 들은 스페셜 특가를 마트에서 사서, 월화수목금을 점심으로 한개씩 꺼내먹으며 콜라를 5분의 1씩 나눠먹으며 과제에서 버티기도 했다.
대학때는 스쿠터를 중고로 한대 사는게 소원이었다. 그러나 그걸 살 돈이 없어, 6만원 주고 산 자전거에 바구니를 달아, 넓은 캠퍼스를 이동했고, 장을 보고, 아르바이트를 다녔다.
왜 소원이었냐면..? 24학점을 수강할때, 수업이 끝나자마자 다른 수업을 들으러 가야했는데.. 캠퍼스 거의 반대편에 있던 다음수업에서, 자전거를 타고는 아무리 밟아도, 항상 지각이 되어, 시험을 잘치고도 원래라면 A가 나올 성적이 C가 나왔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고 오르막 10분을 가야하던 그 수업은 스쿠터면 편하게 2분이면 도달할수 있는 거리였기 때문에, 지각하지 않을수 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필자는 데이비드 블레인처럼 꽤 인내와 절제가 생활화됐었는데, 남들이 필자를 볼때 넌 참 근심걱정없어 보인다고 말할만큼, 생각해보면 그런 수행적 수준의 생활탓인지.. 정신적으로 참 건강했고,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데이비드 블레인의 인내와 절제가 큰 행복이 될수 있다는 말을 체감적으로 이해하는 부분이 있다!
시베리아 툰드라 벌판에서, 혹독하고도 못된 방랑을 하고 체험하여 도달한 체질의 것으로 깨달음적인 것에 가깝고, 개인적 영욕이나 바램보다는, 약간은 좀 세계적인 시선에서 보는 통찰에 가깝다.
아..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말았지.. 절제와 인내!!!
오랜만에 방청소를 해야겠다!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 혈압을 재보니 헉! 혈압을 관리해야 할 때인가? (0) | 2021.04.16 |
---|---|
마스크쓰는 사회문화가 불러온 이어가이드 액세서리! 시대의 소소한 변화들! (2) | 2021.03.05 |
2천포인트 적립 이벤트에 솔깃하여, 네이버 통장을 개설해보다! (네이버 페이 결제시 3% 적립) (0) | 2020.09.04 |
[국내 증시문제] 사상 최초로 정리매매하다 상장폐지 번복된 감마누, 잣대를 잃은 한국거래소의 민영화 말이 될까? (0) | 2020.08.31 |
그 유명한 짜파구리를 직접 끓여먹어 본 썰 이야기! 자유로운 레시피 비법!! (0) | 2020.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