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1204] 코로나 경기에 무너져 사지로 내몰려 한강다리에서 노숙센터로 들어간 83년생 여성 이야기! 살아간다는 행복에 대하여..
[C.S]서브칼럼 (공개주제) 2021. 6. 11. 19:21오늘 문득 아침에 신문을 보니 이런 내용이 들어온다!
[단독] “전 살고 싶습니다” 코로나로 무너진 83년생 혜진씨 (2021-06-10)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5937598&code=61121111&cp=nv
지난 2월 1일 겨울 강 바람이 부는 한강대교 위에 한 여성이 홀로 서 있었다. 다리에서 내려다 본 한강은 유난히 검고 깊어 보였다. 한강은 김혜진(가명·38)씨를 순식간에 집어삼킬 것 같았다. 당시 혜진씨의 몸과 마음은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다섯 차례 이상 극단적 시도까지 한 뒤였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월세방에서 수면제를 한 움큼 삼켰다가 눈을 떠보니 병원인 적도 있었다.
서울 용산구 서울역노숙인자활센터에서 10일 국민일보 기자와 만난 혜진씨는 “모진 목숨은 죽어지지도 않았다”며 과거를 떠올렸다. 혜진씨가 한강을 찾기 전날 집주인은 “방을 빼라”고 했고, 수중엔 5만원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한강이라도 한 번 보고 세상을 떠나자’라는 생각에 그는 대구에서 무작정 서울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하지만 막상 다리 위에서 한강을 마주하자 겁부터 났다. 혜진씨는 결국 뛰어내리는 대신 날이 어두워지면 걸어 들어가자고 생각하고 다리 아래로 내려왔다. 그제서야 한강변을 걷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표정들은 하나같이 밝고 행복했다. 해 질 무렵까지 혜진씨는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서울역 주변에 있는 노숙인재활센터 홈페이지를 우연히 보게 됐다. 혜진씨는 “그래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맘 속 깊은 구석에 남아있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혜진씨는 센터로 전화를 걸어 “지금 자살하려 하고 있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화를 받은 센터 관계자는 “도와줄 테니 내가 있는 곳으로 오라”고 권유했다. 남은 돈이 없어 갈 방법이 없었던 혜진씨를 대신해 센터에서 경찰에 “자살하려는 사람이 있다”며 구조 요청을 보냈다. 이후 용산경찰서 한강로지구대에서 혜진씨를 찾았고 그를 가까운 순천향대 서울병원으로 데려다줬다.
센터의 도움을 받은 혜진씨는 현재 보증금 없이 월세 25만원에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방을 얻어 혼자 살고 있다. 손목의 상흔은 치료를 받아 아물었지만 병원에서는 후유증이 평생 갈 것이라고 했다. 여전히 우울증이 심하고 충동적이라는 진단을 받아 정신과 치료도 받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혜진씨는 자신에게 이런 일이 닥칠 것이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다. 지난해 2월 대구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확산되면서 혜진씨 인생도 180도 달라졌다. 잠시 지나갈 줄 알았던 바이러스는 혜진씨 직장을 빼앗았고 ‘코로나19 감염 진앙지 출신’이라는 사회적 낙인으로 다른 지역에서의 취업도 어려워졌다. 갑자기 일자리를 잃은 시민들이 몰리면서 편의점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에도 7~8명과 경쟁해야 했다. 수개월 동안 구직 활동을 했지만 일자리는 없었다. “내 몸 하나 간수 못하겠나”라고 자부했던 혜진씨의 삶은 그렇게 무너졌다. 지난해 코로나19 집단 감염 이후 1년 넘게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혜진씨에게 재난은 현재진행형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5937598&code=61121111&cp=nv
일자리 잃고 전세 사기까지… 코로나에 벼랑끝에 선 혜진씨-수중엔 5만원뿐… 극단선택 시도 (2021-06-11)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95829&code=11131100&sid1=soc
지난 2월 1일 겨울 강바람이 부는 한강대교 위에 한 여성이 홀로 서 있었다. 다리에서 내려다본 한강은 유난히 검고 깊어 보였다. 한강은 김혜진(가명·38)씨를 순식간에 집어삼킬 것 같았다. 당시 혜진씨의 몸과 마음은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다섯 차례 이상 극단적 시도까지 한 뒤였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월세방에서 수면제를 한 움큼 삼켰다가 눈을 떠보니 병원인 적도 있었다.
서울 용산구 서울역노숙인자활센터에서 10일 국민일보 기자와 만난 혜진씨는 “모진 목숨은 죽어지지도 않았다”며 과거를 떠올렸다. 혜진씨가 한강을 찾기 전날 집주인은 “방을 빼라”고 했고, 수중엔 5만원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한강이라도 한 번 보고 세상을 떠나자’라는 생각에 그는 대구에서 무작정 서울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하지만 막상 다리 위에서 한강을 마주하자 겁부터 났다. 혜진씨는 결국 뛰어내리는 대신 날이 어두워지면 걸어 들어가자고 생각하고 다리 아래로 내려왔다. 그제야 한강변을 걷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표정들은 하나같이 밝고 행복했다. 해가 질 무렵까지 혜진씨는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서울역 주변에 있는 노숙인재활센터 홈페이지를 우연히 보게 됐다. 혜진씨는 “그래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맘속 깊은 구석에 남아 있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지난해 대구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 후 실직으로 삶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김혜진(가명)씨가 지난 2월 1일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섰던 서울 한강대교 난간에 “소중한 사람입니다”라는 자살방지 문구가 적혀 있다.
혜진씨는 당시 구조된 후 다시 자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현규 기자
혜진씨는 센터로 전화를 걸어 “지금 자살하려 하고 있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화를 받은 센터 관계자는 “도와줄 테니 내가 있는 곳으로 오라”고 권유했다. 남은 돈이 없어 갈 방법이 없었던 혜진씨를 대신해 센터에서 경찰에 “자살하려는 사람이 있다”며 구조 요청을 보냈다. 이후 용산경찰서 한강로지구대에서 혜진씨를 찾았고 경찰은 그를 가까운 순천향대서울병원으로 데려다줬다.
센터의 도움을 받은 혜진씨는 현재 보증금 없이 월세 25만원에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 방을 얻어 혼자 살고 있다. 손목의 상흔은 치료를 받아 아물었지만 병원에서는 후유증이 평생 갈 것이라고 했다. 여전히 우울증이 심하고 충동적이라는 진단을 받아 정신과 치료도 받고 있다.
1년 전만 해도 혜진씨는 자신에게 이런 일이 닥칠 것이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다. 지난해 2월 대구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확산되면서 혜진씨 인생도 180도 달라졌다. 잠시 지나갈 줄 알았던 바이러스는 혜진씨 직장을 빼앗았고 ‘코로나19 감염 진앙지 출신’이라는 사회적 낙인으로 다른 지역에서의 취업도 어려워졌다. 갑자기 일자리를 잃은 시민들이 몰리면서 편의점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에도 7~8명과 경쟁해야 했다. 수개월 동안 구직 활동을 했지만 일자리는 없었다. “내 몸 하나 간수 못하겠나”라고 자부했던 혜진씨의 삶은 그렇게 무너졌다. 지난해 코로나19 집단감염 이후 1년 넘게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혜진씨에게 재난은 현재진행형이다.
대구에서 태어나 조부모 밑에서 자란 혜진씨는 성인이 된 후 통신사 콜센터 상담원으로 일하며 생계를 꾸렸다. 5년 전 조부모가 차례로 돌아가신 뒤로는 옷가게와 식당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혼자 생활했다. 2019년 말부터는 충북 옥천군 택배 물류센터에서 물품 분류 일을 시작했다. 대구에서 옥천으로 출근해 저녁부터 새벽까지 일해야 했지만 아르바이트보다 돈벌이가 좋았다. 힘들고 부족했지만 혼자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았다.
불행은 코로나19와 함께 찾아왔다. 지난해 2월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가 터지면서 회사 분위기가 달라졌다. 대구 지역 확진자가 늘면서 ‘대구 사람은 코로나19 감염자’라는 인식이 퍼졌다. 옥천 물류센터에서도 대구에서 출퇴근하던 인력업체 전원을 작업장에서 뺐다. 대구에서 산다는 이유로 혜진씨를 비롯해 15명의 동료가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당시 혜진씨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혼자 살 집을 구하다 ‘전세 사기’를 당한 상태였다. 상담원으로 10년간 일하며 모은 8000만원으로 전셋집을 구했지만 알고 보니 다른 사람 명의였다. ‘가짜 집주인’은 전세금을 갖고 사라졌다. 전세금에 보태기 위해 제2금융권에서 받았던 대출금(3000만원)으로 인한 이자는 실직한 혜진씨에게 큰 부담이었다. 혜진씨와 함께 일자리를 잃은 동료들의 생활도 비참하긴 마찬가지였다. 누구는 전국 각지의 공장을 떠돌며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고, 누구는 성매매를 시작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물류센터 일을 그만둘 때까지만 해도 혜진씨는 다시 일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마비된 것이나 마찬가지인 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혜진씨는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죽는 방법밖에는 해결책이 없다고 느껴졌다”고 말했다.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었지만 전 직장에서 일한 기간이 180일이 안돼 실업급여도 받지 못했다. 정부가 지난해 4월 지급했던 40만원의 긴급재난지원금과 대구시가 같은 달 저소득 위기가구에 지급했던 한시적생계지원금 50만원은 금방 바닥을 드러냈다.
지난해 6월부터는 월세 낼 돈까지 바닥나 보증금에서 월세가 빠져나갔다. 희망을 찾을 수 없었던 혜진씨는 여러 번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마다 월세 독촉을 하러 온 집주인에게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다. 집주인은 지난 1월 “더 이상 데리고 있을 수 없다”며 방을 빼 달라고 요구했다. 혜진씨는 노숙생활을 하느니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혜진씨가 한강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마음먹었던 지난 2월 1일 경찰이 혜진씨를 발견했을 때 그의 팔엔 깊게 파인 상처와 함께 반창고 하나가 붙어 있었다. 경찰은 즉시 혜진씨를 순천향대 서울병원으로 이송했다. 이후 자살예방센터 상담이 이뤄졌지만 입원비가 없던 혜진씨는 몰래 병원을 빠져나와 노숙인재활센터로 향했다.
혜진씨는 센터의 도움으로 지난달 24일부터 경기도 용인 택배 물류센터에서 다시 물품 분류 일을 시작했다. 오후 6~7시부터 일을 시작하면 다음 날 새벽 6시쯤 끝나는데, 잔업이 많아 8시까지 일을 해도 혜진씨는 행복하다고 했다. 혜진씨는 “쪽방이라도 당장 지낼 수 있는 곳이 있고 일을 할 수 있어 다행”이라며 “꼭 자립해서 밥이라도 혼자 해 먹을 수 있는 원룸을 얻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95829&code=11131100&sid1=soc
#기사소감
분탕질을 일으킨 코로나 경기가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하고 있다.
사람들은 왕년이 어쨌건, 돈이 떨어지면 누구나 비참한 기분을 느끼지만,
남자들은 그냥 돈이 없으면 야생동물처럼 찰지게 살아가면 되지만,
여자들은 30대가 넘어가면 나름의 품위유지등을 생각하기에, 소득을 잃을경우 더욱 힘들다.
돈이 남아돌때는 별로 필요하지 않은 대출금리도 한없이 저렴하지만,
정말로 돈이 필요할때는 대출조차 받기도 힘들다.
돈이 남아돌때는 이곳저곳 돈을 맡긴다는 사람도 나타나지만,
돈이 없을때는 단 돈 1만원도 빌리기가 여의치 않다.
그녀는.. 남자들도 3D로 생각하고 일에 비해 저단가여서, 여간 잘 안하려 하는 야간택배 물류일을 하면서 행복해한다.
가렴주구라기 보다는 정부가 딱히 지원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달리 사장이 아방궁을 혼자 몰래 지으려고 꿍쳐서 그런게 아니라, 택배시장의 배송비나 경쟁력에서 임금 견적이 그러한 것이다.
사실 편의점에서 편하게 카운터보면서 쉬는시간 스마트폰 보면서 일해도 시급 9천~1만..
물류노동을 빡세게 해도 시급 1만...
정말 몸을 놀리지 않으면 병이 나는 스타일, 선천적으로 체력이 넘치는 사람들이 간혹 하는 것이다.
“쪽방이라도 당장 지낼 수 있는 곳이 있고 일을 할 수 있어 다행”이라며
“꼭 자립해서 밥이라도 혼자 해 먹을 수 있는 원룸을 얻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젊거나 30대의 여성들이 대부분 잘 몰라서 그렇지,
혹은 왠지 모를 이미지때문에 건설일을 기피하는 문화때문에 그럴수도 있지만,
여성인력쪽을 두들겨, 큰 현장에 화기감시자로 빠졌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다. 8시간 근무, 12만원... 큰 노동없이 화재감시.. 걔중엔 대기업쪽 공사에 잘빠져 한두달을 야간추가까지 매일 두대가리로 타다보면 매월 600씩 버는 경우도 있고, 남자 기공 부럽지 않게... 흐름을 잘타는 경우도 있다. 남자들도 이야기를 듣고 우와~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
물론 피곤하긴 하지만 사람이 고일당의 매력, 돈에 환장하면 피로도 싹 가시는 법이다.
그래도 현장은 사람이 부족한 편이고, 그렇기에 중국이나 우즈베키스탄등의 여성등도 근래는 참 많다.
옛날 파마머리 몽빼아줌마가 아니라, 걔중엔 저 사람은 TV에서 드라마나 찍지.. 왜 이역만리 이곳에 와서 대패질을 할까 훤칠한 처자들도 많은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 한번 설 자리를 잃은 사람들에겐 원룸조차도 꿈의 궁전이다.
코딱지 만한 방이라도.. 창문한칸이 있고...
가스렌지가 있고, 주거할수 있는 주방이 있고, 개인적 욕실과 화장실이 있고, 가스보일러를 틀면 즉각적으로 뜨거운 물이 나오고, 냉장고에는 먹을것이 가득하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은 잃었다 되찾으면 그렇게나 소중한 것이다.
필자가 스쳤던 국회의원 보좌관을 지냈던 어떤 아저씨는 평생을 휘젓다가, 은퇴하고 처음으로 삽질같은 노동일을 하고, 손에 쥔 현찰 8만원이 너무나 그 이전에 벌었던 돈과는 다르게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져.. 집에 갈때까지 그 돈을 꼭쥐고 걸어가는 길이 그렇게 행복했다고 한다.
국회에서 휘젓던 그 옛날보다 오히려 노동의 신성함을 처음 느낀 요즘이 훨씬 행복하고 즐겁게 느껴진다고 말했던 것이다.
헬조선에는 닿을수 없는 부에 대한 상대적 빈곤이나 불행이 넘치지만,
한강다리에서 노숙자센터로 들어가, 택배물류일을 하며, 아마 그녀는 처음으로 다시 11만원을 두손에 거머쥐면서,
생존할수 있는 희망과 먹거리를 안겨주는,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이 돈이 너무나 따뜻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며칠을 굶주린 아프리카 거지 어린이가 한움큼의 빵을 얻게 되면서 때론 누구도 맛보지 않은 큰 행복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원하는 것이 적고, 이미 가진것에 대해서 감사할줄 아는 사람은 항상 남들보다 행복하고, 어린 마음으로 살아갈줄 아는 지혜를 깨닫는다.
수조원을 가졌어도, 원하는 것이 더 많고 온갖 중압감속 오만가지를 신경을 써야 하는 재벌들의 삶은 일반인보다 불행할때가 많은 것이다.
당시 알려진 모든 나라들을 정복하고자 했던 헬레니즘의 황제 알렉산더는 원정길에 무소유로서도 지복에 차서 살았던 나체의 단다미스를 보고, 자신은 광활한 제국을 지녔지만, 그의 행복에 질투를 느꼈다고 한다.
결국은 빈손으로 태어나 빈손으로 돌아간다는 말처럼..!
시련속에서 사람은 크게 성장할 기회를 얻고, 시련이 클수록 더욱 크게 성장한다.
그녀의 후반 인생에 건투를 빌어본다!
[2021.6m.11d, 오후 19시 21분, Charlie Conspira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