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참선을 한다.
단 한시간도 제대로 앉아있지 못한다면 그러한 평상심으로 어찌 세상문제를 다룰까?
보통 이 매트릭스풍의 음악을 들으며 한시간 이상 부동의 자세를 견지한다.
그러나 자주 하지는 않는다. 오랜만에 큰 생각들이나 방향성을 정리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 옛날 사람들이 그렇듯이 목욕재계하고 집중의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사람이 육신도 목욕을 하듯이, 정신적 샤워를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주변의 모든것이 밝아지면서 분별력이 확 올라가는 느낌이지만,
지나치게 인격이 사라져, 때론 비인간이 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어떤 스타일, 성격이었다고 하는 것들이 하나의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으로 발현된 프로그래밍에 불과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의식이 확장되어 자아를 벗어나는 순간들이 온다.
그러다 문득 세상을 둘러보면, 세상 사람들이 의견하나하나를 가지고, 감정 하나하나를 가지고 그토록 그것이 자기 정체성의 전부인 것 마냥, 서로 죽일듯이 논쟁하고 싸우는 것이 문득 다 부질없다는 인식까지 도달할때가 있는 것이다.
매트릭스 영화는 비유적이지만, 날아오는 총알이 실제라고 인식할때엔 강력한 영향력을 주고 상처를 입히지만, 그것들이 부질없고 허상이라는 인식이 충분히 실재적으로 강해질때, 힘을 잃는다.
가끔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로, 말 한마디로 죽일듯이 싸우고 덤벼드는 사람들이 있다.
무엇때문인가? 그들은 날아오는 총탄 하나하나를 너무나 자기 삶의 모든 것인마냥 오로지 그순간에 집중해버린다. 뭔가가 씌웠다고 할만큼 하루하루의 모든 순간에 조건반사적으로 수가 틀리면 성을 내고, 움직이는 것이다. 이미 강력하게 설정하고 고착화된 자기 자신의 배역에 몸을 맡기고, 그 배역이 절대적 자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평안을 위해서라도 그럴때는 한발 뒤로 충분히 물러서서 그런 자신까지도 제 3의 타인처럼 바라볼수 있는 객관적 자세가 필요하다.
뭐랄까? 자신에 대한 고집이나 주관성, 선입견이 줄어들수록 매우 객관적사고와 인간적 이해관계나 입지를 벗어나고, 나 자신의 이해관계를 벗어난 매우 절대적 공정의 사고가 대신하게 된다.
사실 사소한 것과 습관과 편향에 얽매인 나를 벗어나, 인격적 관점을 벗어날수록 사고의 폭이나 객관성은 높아진다.
비유를 들자면 그것은 보다 높은 산정상에 올라가,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
나라는 경향성, 의식주에 얽매이고 온통 잡다한 욕망으로 가득한 일상적 자아가 가득찰수록 당장의 눈앞에 나무만을 보게 된다. 음모론적 탐구를 할때도 사적인 관점을 자신도 모르게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필자는 좋은 말로 이것을 신적인 객관성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사익적인 나란 자아를 약간만 덜어내도, 그 자리에 어떤 그리스도적인 공의의 기운이 들어온다.
모든 것이 잠식될정도로 오로지 나라고 할수 있는 자아만으로 자신을 채워서는 안된다.
그러면 필경 탐욕과 욕심등에 휘말리게 되고, 부정적 감정들에 휩싸이게 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내면의 일부는 비어있어야 집안에 열린 창문을 통해 환기가 되듯이, 신선하고 맑은 바람이 들어올수 있다.
필자가 7년에 가까운 음모론을 하고, 험악한 사탄주의 백매스킹같은 놀라 까무라칠 사실들을 발견하고도
멘탈적으로 여여한 것은, 아마도 그만한 수행력이 있어서일 것이다.
블로그의 일상글을 쓸때는 나 자신의 개성을 채워서 써나간다면, 음모론은 공의의 영역이기에 그럴때의 필자는 찰리라는 사람의 격을 벗어난 최대한 객관성있는 관점에서 사고하고, 문제들을 전달하는 것이다.
거기엔 내가 없다. 그래서 일부 글들은 때론 무인격적이라고 할만큼, 건조하게 느껴질수도 있다.
나라는 개성.. 농담 좋아하고, 되도안되는 유머 던지고, 여자 뒤꽁무니 보는걸 좋아하고.. 정말 보잘것 없지만..
그런 느낌이라도 때론 한평생을 살아온 천성이고 나이기에, 티끌만한 가치는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끔씩 일신을 위해서 저렇게 앉아있다보면 메타인지가 확 확장되어, 평소에 생각치도 못하던 세상인식을 할수 있게 된다.
오늘 그렇게 문득 앉아있다가 생각이 든 것은, 이제 개인적인 사람에 대한 이야기나 관심들은 그만두어야 할 때가 왔다는 결론이었다!
나이가 들어서 좀 점잖은 삶을 살기위해 그런 것은 아니고,
필자는 좀 주변과의 소통에 원래 무관심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아예 사람에 대한 관심이 사라져서도 아니며,
가장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시대가 그만큼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달리 무언가가 아니라, 지금이 매우 특수한 결정들이 지나간 시점, 2022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필자는 사람 비판을 그렇게 잘 한적도 없고, 가급적이면 타인에 대해서도 호조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써오고,
또 나 자신도 즐겁기에 글을 써왔다.
2020년까지였다면. 사람들은 거기에 대해서 딱히 나쁜 생각이나 유감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근데 이제는 필자는 2021년 내내 백신을 맞지 말라고 경고하였고..
2021년 내내 대부분의 경고가 무색하게 전세계 인류 대부분이 백신을 맞아버렸다.
내가 어떤 이들에 대해 좋게 글을 쓰고, 칭찬을 하고 그랬다한들..
그 누구도 코로나 백신을 맞기 전인 2020년과 달리,
거의 모두가 코로나 백신을 맞은 현재 시점에서 세상의 대부분 사람들은 필자의 경고글에 대해서, 이미 경고의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 선택들을 지나왔기에 불유쾌할 것이다.
예전에는 음모론을 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달고 참여하고 그랬다.
앞으로 다가올 악에 대한 경고였고, 아직 그 악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근데 지금시점에선 D-day가 지나갔고, 음모론을 알고 탐색하던 사람들마저 어느순간 소리소문 없이 침묵하며 사라졌다.
하지 말라고 했고, 그들 스스로도 "옳소!"라고 외치며 과거에 동조했던 것들을,
막상 때가 닥치니, 너무나 어이없게 그들이 해버렸기 때문이다.
과거 가지고 있던 것에 비해서 조금의 배고픔, 조금의 희생, 조금의 이권도 포기할 생각이 없는 이들이..
현실에서 필자가 오래전부터 경고해온 백신을 결국 가장 먼저 맞았을 것이다.
자신의 건강의 소중함보다는 당장 통장의 이득과 삶의 수준의 영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내가 과거에 어떤 사람들을 칭찬하고 행복을 쾌유했다고 한들..
그 사람들이 필자의 블로그를 현시점 2022년에 방문할때는 음모론의 매일같은 경고에서 불유쾌함과 절망, 오히려 증오를 느낄수도 있게 될 것이다.
좋은게 좋은거라고 둥글둥글하게 사는게 항상 좋다고 생각했지만,
또한 백신일은 경고해도, 세상돌아가는 일은 접종자, 비접종자 차별하지 말고 자유롭게 다루자고 생각했지만, 이점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저 사람은 참 착하고 칭찬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필자는 또한 내내 경고해온다. 짐승의 표가 될 수 있는 백신과 마귀의 일들에 합류하지 말라고..
앞으로 닥칠 인구감축의 커다란 음모에서 자신의 생명을 인질로 저당잡히고 농락당하는 일들에 참여하지 말라고.. 한번의 블로그가 날아가고, 음모론 유튜브 채널이 연속 3번 날아갈 정도로는 경고해온 것이고, 필자가 알리지 않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토록 훼방들이 있었고, 시청자들 대부분이 그것을 적극적으로 주변에 가족에게 알리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도마위에 오르지 못하고 변방의 음모론쯤으로 취급받았을 뿐이다.
만약 합류하였다면, 필자가 아무리 어떤 사람을 칭찬하였을지라도, 그 사람은 필자에게 그 칭찬의 양보다 더한 유감과 분노를 느낄수도 있다.
필자입장에선 이 시대에 사람에 대한 일들을 이야기해봤자, 돌아오는게 없고 오히려 원성만 듣게 되는 시점에 이른 것이니.. 이제는 이런 취미도 부질없는 것이 되어버려서 놓아버려야 하는게 아닌가 싶은 때가 왔음을 알게 된 것이다.
필자가 오히려 사람을 칭찬하거나 내세우면, 오히려 그들이 더욱 상처받는 형국에 이르르게 된 것이다.
이것도 결국 어찌할수 없는 때에 이르른 것인가!!
어찌보면 무심했구나 싶지만..
아이러니하게 정말 비인간적 시점까지 인식을 확장하고 사고를 넓힐때 문득 들어온 통찰인 것이다!
글을 쓰는 나라는 블로그의 입장속에만 집중하여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그런 글을 쓰는 나 자신도 하나의 타인으로 보고, 방문자들도 하나의 타인으로 보고, 좀 더 전지적인 관점으로 사고를 확장해볼때 문득 새로운 통찰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사고 속에서 나 자신의 개성이 많이 들어가있을때는 본능적인 부분들이 앞서서 그만큼 넓은 시각으로 생각하기가 힘들다. 인간의 한계는 인간이 너무나 쉽게 육체를 가진 자아적 관점에서, 너무나 인간적 사고방식에 길들여져 세상을 바라보려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신적인 관점이 아니다. 하다못해 신에 대한 추상화도 그와같이 인간적 시점에서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우선순위에서 매일같이 백신부작용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나오는 현황속에서, 한 사람이라도 살려보겠다고 이 과업을 하는 것이고,
우선순위에서 더 중요한 우위를 둘수 있는 것은 없다.
세상이란 물에 빠져 익사해가는 사람들이 넘친다면, 끝까지 가라앉기 전에 손을 잡고 건져올리는 것보다 세상에서 달리 가치있는 일이 또 무엇이 있겠는가?
백신이란 함정에 빠져 건강이 악화되어 뇌출혈, 사지마비, 심장이상, 발기부전등등 건강을 잃는 사람들이 넘친다면, 끝까지 가라앉아 사망에 이르기 전에, 함정과 사악한 간계를 일러주어 손을 잡고 건져올리는 것보다 세상에서 달리 가치있는 일이 또 무엇이 있겠는가?
아무도 말하지를 않는다해도 누군가는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누군가는 건져주려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원래 거의 모든 종교의 설법들도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그것을 고민하지 말고, 바로 내일과 모레로 미루지 말고, 하루하루 최소한의 시간이라도 파트타임 잡으로라도 행하면 될 뿐이다.
문득 이런 이해에 이르게 되니, 너무나 쉽게 계시록속 말세의 세상에 관한 구절들이 이해된다.
말세에 두 증인들이 하나님의 사람인데, 오늘날 그토록 신실한 종교인들이 많은데..
왜 온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싫어한다고 예언되어 있는가?
두 증인들은 필자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666 짐승의 표를 받지 말라고 그들은 불같이 경고를 할터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히려 세상을 쫒아서, 이익을 쫒아서 그것들을 별 생각없이 받는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그래도 천국갈수 있다고 새로운 교리들을 제조하여 자신들을 지키고자 할터인데,
그렇게 하면 너희 자신을 속이고 합리화하는 것 뿐이며, 결국 선을 넘었으니 지옥간다고 말하는 두 증인의 존재가 눈에 가시처럼 여겨질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필자가 블로그에서 다루던 일은, 음모론을 통한 세상경고, 뮤직비디오, 작품분석, 사람등이었고, 아주 작지만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주식투자등이었다.
이제는 사람에 대한 부분은 빼야할 것 같다.
사실 음모론을 하면 지나칠 정도로 사악하고 어둔 부분들을 목도하기에,
필자는 음모론만이 아닌, 재미난 세상이야기나 농담을 통해서, 필자 자신의 스탠스를 중화시키려 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다.
사실 필자 자신도 즐겁게 살고 싶은 삶의 부분들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에..
그러나 다행인 것은 비록 몇명이라도 필자의 블로그를 통해서 선택을 바꾸었고, 그들 대부분은 필자에게 감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30대 무렵 필자는 아프리카까지 여행을 하며 나름 방랑을 했지만, 인생에 있어서 유의미하게 잘 살았다고 남들앞에서 말할수 있는 자아실현이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인생에 어떤 목표를 가지고 후반기를 살아갈 것인가? 한참을 생각해본적이 있었다.
살아가는 동안 천명의 목숨을 구할수 있다면, 그건 매우 유의미하게 다른 어떤 삶의 목표보다 가치있는 것이 될거라 생각한적이 있었다.
그런 목표를 이룬다면, 내가 가진 것이 한푼 없어도, 삼성 이재용 부회장하고 만날일이 있어도, 오~자네 왔는가?하며... 혹은 대통령을 만나도 아주 당당하게 악수를 내밀수 있을 것이다.
뭐~ 그러니까 사람앞에서 만나서 떳떳하기보다는, 언젠가 신앞에 서게 될때도 내가 떴떴하다고 말할만한 그런 인생루틴을 찾아보기로 한 것이었다.
저 사람은 단순히 돈을 열심히 버는 활동을 한 것 뿐이고, 이 사람은 단순히 인생에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 출세지향하고 열일 한 것 뿐이지만,
내가 인생에서 저 사람들보다 이룬 목표나 가치에서 꿀릴게 없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떠한 사람등이 백신 부작용을 앓고, 가족이 백신 부작용을 앓아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할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답글로 문의를 한다면?
그런 부분에선 필자가 최대한 연구한 한도에서 성심성의껏 답변할 것을 약속한다.
이미 병원에서 입원하여 위중한 상태가 아니라, 백신 부작용의 초입이라면, 분명히 그 시점에서는 회복할 여지가 상당수가 존재한다. 단지, 오답이 아니라.. 수많은 함정들이 찌라시처럼 구글 정보에 넘치는 속에서, 오답을 피하고, 몇가지의 정답의 선택지를 수행하면 될 뿐이다.
필자가 지금 바라보는 세상의 시각은..?
지금은 누가 좋고, 누가 나쁘다.. 그런 것을 판단하고 성토하거나 하는일이 별의미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어차피 그들 사람들 대부분이 거의 다 세상에서 강제 로그아웃될 지경에 이르렀고,
선인이든 악인이든, 일단은 살아남아야 세상에서 각자가 추구하는 진리를 더 찾을수 있지 않겠는가?
말세에 온갖 일이 닥쳐도 평안한 자들이 있을 것이라 하였다.
부디 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많기를 바랄 뿐이다.
딱히 중요한 내용은 아니지만, 필자가 음모론 연구를 할때의 접근하는 방식, 사고법이나 멘탈관리적 측면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해봤다. 또 누군가는 도움이 될수도 있겠지!
누군가 명상은 안좋은 것이에요라고 말한다면?
아냐.. 난 저렇게 50분동안 마음을 비우고, 10분동안은 전심전력으로 기도를 한다고 말하겠다.
이마 위에 제 3의 눈을 뜨기 위해서 뻘짓거리만 하지 않으면, 고요하게 앉아 숨쉬기 운동과 정신집중은, 오늘날 오만가지 잡생각들로 너무나 넘쳐나는 현대인들에게, 정신적 샤워를 위한 너무나 좋은 루틴이 될수 있음을 밝힌다.
건강에도 사실 좋은 측면이 있다. 심호흡을 반복적으로 집중하며 저렇게 앉아있는 것만으로 필자는 만성적 고관절을 자가치료했다.
어느 이상으로 깊게 집중하면, 나와 세상의 경계를 딱히 느끼지 못할 쯔음에 도달하면 극도의 릴랙스가 찾아온다. 그러면 온몸의 근육이 풀어지고, 불편했던 자세들이 알아서 교정된다.
그렇게 딱히 벼러별 스트레칭으로도 낳지 않던 고관절 통증이 한순간 사라졌던 것이다.
자세가 바뀌면서 뭉친 근육들이 풀리고, 걸을때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편안함을 느끼면서, 평소에 자세가 얼마나 경직되어 있는지 비로소 새삼 알게되는 것이다!
사실..이게 묵상? 참선? 기도? 명상? 마음 비우기?? 뭐라고 딱히 정의하기 어렵지만,
만약 어떤 30평생 이렇게 앉아있기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하루 한시간씩 어떻게든 뻐튕기면서 다리에 통증을 참으며 일주일을 앉아있게 되면.. 그 사람은 엄청난 정신적 변화를 맞이할수 있다.
약간의 좀더 성장이 붙은 인내력과 함께, 일평생 자신이라 여기던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일주일만에 사고방식이나 인지가 2배쯤 넓어진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평안이 함께하길 바라며.. [2022. 6m. 18d, 밤 22시 50분, Charlie Conspirac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