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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이미지- https://drive.google.com/file/d/1b-EF13kR6N6RxWLlhG76qKWuIwvnoCeA/view

 

#유심무심.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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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심이 있기에 사람은 자아를 가지며, 개체성을 이룬다. 
재밌게도 일괄적으로 공장에서 출시된 스마트폰은 그 자체론 어떤 구분과 기능이 없으나, 
유심칩(USIM 칩)을 꼽을때 각각의 기기는 개인적 아이덴티티를 이루고, 개별성을 가진다. 
(U=당신의, Sim=핵심)?
배터리가 심장이라면, 개체성은 이 고유성을 이루는 각기다른 유심칩에 의해 구분된다.
재밌게도 인간도 유심, 자아, 스스로를 개인이라 여기게 하는 그 마음에 의해 타자와 나 사이에 개별성을 확보한다.

유심(有心)은 무심(有心)속에서 펼쳐지고, 유심은 무심속으로 사라진다. 
세상사 일체의 만상은 유심으로 펼쳐지나, 무심은 캔버스와 같이 유심을 지탱한다. 
유심의 가락이 연주되는 것은 악보의 쉼표처럼 무심의 순간이 있기에 가능하다.
유심으로 갈수록 나툼은 커지며, 무심으로 갈수록 신의 에센스에 가까워진다.
유심으로 갈수록 오류는 커지며, 무심으로 갈수록 절로 올바른 도리들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지식과 이성으로 얻는 지혜도 가치있으나, 
무심의 직관으로 점점 알게 되는 사물을 올바로 꿰뚫어보아 알게 되는 이치에는 미치지 못한다. 
세상사 유심으로 펼쳐진 생각으로 온갖 양상을 다투나, 무심을 이해하려는 이는 적다.
무심만이 절대적으로 있었다면은, 유심이 펼쳐질 공간, 세계도 나타날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세상이란 측면은 그 자체로 경계와 구분, 다툼의 자락인 유심의 수많은 운동력으로 지탱되기에, 
사실 유심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의 세상에서 영원한 평화나 안식을 개념적으로 상상할수 있지만, 
그 자체로 그것은 오지 않는다. 
만약 유심의 세상이 하나가 아니라, 수천개이고 화복의 양상이 각기 다를지라도, 
영원한 안식을 원하는 이는 이 유심의 세상들 자체가 필연적으로 자아적 괴로움을 동반한다는 것을 안다면, 
영원함속에서 영원히 유심하기보단 언젠가 무심으로 뛰어넘을 도리를 추구할 것이다.

하지만 유위(有爲)함의 세상속에 이미 떨어진 이에게
유심은 당장 무위(無爲)한다고, 무심의 지평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미로찾기처럼, 유심은 시행착오속 나침반을 밝히듯 적절하고 올바른 유심의 행방에 의해
무심에 도달할수도 있다.

인간은 스스로 노력에 의해서 나아갈수 있다. 이 또한 진실이다.
인간은 스스로 노력에 의해서 나아갈수 없다. 이 또한 진실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한계성과 제약을 선천적으로 타고난다. 
하지만 선택여부에 따라서, 인간은 그안에서 존귀함을 추구할수도, 혹은 비천함을 추구할수도 있다.
수많은 선택지가 있으며, 스스로가 행위속에 선택하는 의미들을 우습게 여긴다면, 거기엔 발전이 없다.

생각하는 자는 누구인가? 
탐심속에서 매일매일을 아수라처럼 살아가는 것을 희구하는 것보다, 
차라리 유심을 무심히 무욕(無慾)한 사유속에 산책하며, 그것을 추구하는 것도 좋은 방편이다.

수많은 유심의 탐욕들로 한시도 그러기 어려운 세상속에서,
살면서 무심히 하늘을 바라볼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수많은 유심의 이해들로 재물만을 탐하기 바쁜 세상속에서..
살면서 무심히 남을 돕고 선의를 베풀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유심이 깊어지면 마음은 무거워지고, 무심이 깊어지면 정신은 더욱 선명해진다.
악업이 깊어지면 정신은 혼탁해지고, 선업이 깊어지면 정신은 더욱 닦인다.

마음이 가난한 자들은 그래서 이미 복이 있나니..
이미 선업으로 인하여 하늘에서 보상이 있음을 자각할 정도로 이미 맑아져, 
유심의 오탁악세(五濁悪世)에 얽매이지 않으며, 무심의 평강에 대해 이해해 나가기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지나가게 되는 천성적 무지의 축복과도 같은 어린시절을 지나고 나면, 
사람은 자신의 에고와 부푼 자아들, 그 자체로 인하여 스스로 수많은 번뇌의 양상을 심어나가게 된다.
살면서 흔치는 않지만, 매우 무심한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깊은 쾌락을 쫒다 괴로움의 반동을 맞는 그런 조건과 대상이 부여하는 행복이 아니라, 
매우 색다른 차원의 깊은 행복이 그 순간에 있었을 것이다.
백여일을 살다가 어쩌다 경험하는 그런 무욕하고 평강했던 하루를 목도하며,
다시금 그 하루를 염원하지만, 끝도없는 세상사의 찌꺼기, 갈급한 마음들이 그것들을 수도없이 방해했을 것이다.

유심을 지나치게 쓸수록 그림자가 깊어지듯, 거기 괴로움이 있다. 
유심을 적게쓸수록  그림자가 옅어지듯, 거기 초연함이 있다.
현명한 이는 그런고로 예로부터 세상속을 헤엄치며 살아도, 모든 정신을 놓지 않고, 세상속을 비껴흐르듯 살아간다.

지상의 너머 펼쳐진 하늘나라, 
이 고해의 바다속 너머 펼쳐진 더욱 청정한 경계의 바다, 피안! 
그것들은 적어도, 지금 이 유심함으로 넘치는 세상보다 더욱 무심한 세상 끝자락이나, 
절대적 무심에 가까운 세계속에 있을 것이다.

한 손으로 나오는 손바닥 소리는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결국.. 그러한 것~ 할!!!

#단어산책: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일체가 마음에 의해 나아간다.
*염불무심 재식유심(念佛無心齋食有心)
-염불에는 맘이 없고 잿밥에만 맘이 있다. 중들이 입으로 염불을 외기는 하나 실상은 잿밥 먹는 데 더 마음을 둔다는 말로, 자기가 마땅히 하여야 할 일에는 마음을 쓰지 않고 잇속 있는 다른 데에만 관심을 둔다는 뜻.

 

 

[2018.8m.16d (추정), Charlie]

 

=====유튜브 원본링크(지금은 채널 폐쇄!)====

 

 

[C.S-46] [유심무심(有心無心), 개념적 이야기들] https://www.youtube.com/channel/UCs2HohvZ1g3ao3DiEZr2ocw/community?lb=UgyDloW13TSCcgpp93x4AaABCQ

 

 

p.s. 예시속 찰리의 음모론 영상 공유링크안내 (유튜브 채널 2021년 폐쇄 이후)

https://charlieman.tistory.com/1206

 

[C.S-1470] [공지] 찰리 컨스피러시 유튜브 음모론 채널 삭제이후 모든 영상 307편 (135GB) 공유링크 좌

2015년도부터 2021년도까지 3번의 계정폭파와, 서브 2채널까지 제 모든 역량을 때려부으며 만들었던, 모든 영상 공유합니다. 2014년부터 한 800여편 영상을 만들었나.. 걔중에 음모론 채널 영상만 300

charlieman.tistory.com

 

[2022. 1. 9. 오후 18시 24분 재발행, Charlie Conspir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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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harlie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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