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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갈수록 밥그릇 크기가 작아지고 있고, 요즘은 시내등 사무직 회사원들이 주로 이용하는 식당에 쪼그만 스텐 밥그릇에 밥도 들어있는듯 마는듯, 몇숟갈 뜨면 밥그릇이 비워지는 식당들이 많다. 


조선 시대 사람들은 밥을 막 대접에 퍼서 먹고, 양반들도 밥그릇 사진을 보면 어마어마한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합리적 이유들이 있다. 



일단 당시 특권층이 양반이 누릴수가 있는 큰 부분은 노동과 생업에 종사하지 않는다는 것외에 달리 있다면 식도락이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어떤 모임, 연극이나 영화, 콘서트등 문화소비로 즐길만한 무언가가 없었고, 옷이란 것도 어떤 패션이 있다기보다는 다 그차림이 그 차림이었다. 


방안에서 사서삼경을 외우는 것외에 달리 누릴만한 뭐가 있었다면은, 기방에 가서 주색잡기를 했을테지만, 

심심하기 그지없는 기본적 생활에서 딱히 누릴만한 것은 음식을 맛있게 먹는 일이었을 것이다. 


혹은 실제로는 저렇게까지 먹지 않는데, 외국인이 귀한 카메라를 가지고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뭔가 좀 잘 보여주려고 평소보다 있는 반찬 없는 반찬 끌어모아,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기에 유독 사진 이미지가 저럴수도 있었을 것이다. 



둘째로는 교통이다. 양반이라 하더라도, 사진을 보면 상다리가 부러지는 밥상에 비해 말랐다는 느낌이 드는데, 당시엔 비포장 도로나 구불구불한 흙길이 많았을 것이고, 가마나 말을 탈 정도의 권세가 없었다면은 기본적으로 걸어다녀야 했다. 


현시대에 30분만 걷기 운동을 해도 수많은 비만과 성인병을 예방할수 있다고 하는데, 기본적으로 양반이라도 과거를 보기위해선 국토대장정마냥 전국일주를 해야했고, 사실 상당한 노동이다. 


대식할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서민이나 머슴같은 경우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필자가 스무살 무렵만 해도 아르바이트로 농촌에 가서 그 옛날 두레에서 쓰는 밧줄을 여러명이서 당겨 흙을 퍼내는 삽질등을 한적이 있는데, 지금처럼 트랙터로 땅을 가는 것도 아니고, 소쟁기를 끌며 , 혹은 삼지창을 가지고 땅을 골라내야 했을 것이다. 쪼끔 질퍽질퍽한 곳을 골라내기 위해 힘써서 삽집을 하다보면 10분만 해도 허기가 지는 것이다. 


조선시대 농사일이라는 것은 중노동이고, 허기가 지면 몸이 곱절로 힘드니, 또 하루 두 끼 문화였다고 하니, 밥을 먹을때 배터지도록 먹을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른 이유를 생각해본다면, 고기나 냉동식품등 여러가지 영양소 있는 반찬이 넘치는 현대적 식탁이 아니라, 당시엔 고기가 귀해 명절때나 설렁탕이나 먹을수 있을 정도였을 테고, 대부분 채소반찬이거나, 정말 그도 아닌 소작농이나 서민입장에선 밥하고 간장밖에는 끼니를 때울수가 없었을 것이다.

밥이란게 흔히 식사를 한다는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밥의 칼로리는 생각보다 높지 않다. 


밥한공기에 쌀을 퍼서, 전기밥통에 물을 충분히 붓고 밥을 하면, 밥이 6~7공기는 나온다. 

사실 다된밥 한공기에서 우리가 섭취하는 쌀의 양은 본래적 크기라면 한줌의 쌀들인 것이다. 



채소등은 거의 열량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시대 고기가 귀한 서민들은 밥이라도 두 세배는 많이 먹었을수 밖에 없다. 



그게 딱히 희한한 일이 아니다. 



매일매일을 풍요롭게 고기반찬을 올리고 먹으면, 밥한공기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집어먹는 수많은 반찬에서 골고루 영양소가 있고, 이렇게 먹으면 오래 든든하다. 


오히려 꾸준히 영양소가 남아돌고 과잉하여, 다음 끼니를 먹을때도 그렇게 배가고프지 않은 상태가 지속되는 것인데, 현대에는 일 자체도 노동이 줄고, 교통도 대부분 걷기보단 탈 것을 타고 이동하고, 또 대중교통을 타면 겨울엔 추위를 피할수 있으니 열량소모도 적고, 난방을 틀고 지내면 딱히 열량소모할 기본적 신진대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밥에 간장만 비벼 먹으면?? 어떠할까??


필자는 정말 돈이 없을때, 김치와 라면마저도 떨어지고, 간장하고 밥으로만 한 5일 살아본적이 있는데.. 



반찬이 넘칠때 하루 두끼에 밥을 많이 먹을 필요가 없었지만, 

그렇게 먹으면, 하루 세끼 한끼마다 밥을 두공기씩 크게 비벼먹어도 금방허기가 지게 된다. 

칼로리표와 같이 밥만으로 생활을 하면, 반찬을 통한 에너지 공급이 없기 때문에 이 역시 밥만으로 충당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생활적 여유가 없다는 심리적 감각이 더욱 빨리 허기를 느끼게 하며, 

영양소가 골고루 흡수되지 않고, 일부는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에, 많이 먹어도 뭔가 힘이 완전히 나지는 않고 어딘가 허기진 느낌이 드는 것이다. 

많이는 먹는데 또 허기는 지는 것이다. 



먹거리가 없을때, 김치에 계란하나 풀어 라면에 밥말아먹는게 능사이지만, 

밥하고 간장만 먹으면 문득 또 그렇게 먹는게 호화성찬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는데 영납득이 안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부터 3일동안 정말 그러한지 밥하고 간장만으로 생활을 해보길 바란다. 자신이 먹게되는 밥공기양에 놀라게 될 것이다. 


정말로 다이어트를 하고 싶다면? 그렇게 먹으면서 평소먹는 밥량만큼만 먹으면 될 것이다. 



보릿고개나 내일 먹을 쌀걱정을 하면서, 또한 냉장과 보관이 어렵기 때문에.. 

조선시대엔 눈앞에 먹을밥이 있다면, 최대한 많이 먹는 것이 능사였을 것이다. 


그렇게 해도, 노동은 과하고 허기는 지고, 하루종일 걷기 일쑤이고, 집에서도 난방을 위해 땔감을 구하려면 나무를 베고 지게를 베는 중노동에, 없으면 추위를 버텨야 하니 열량소모가 컸을 테고, 

소위 비만인 사람이 없었다. 




고구려 시대엔 밥공기가 더 컸다는데.. 이것은 고구려라는 땅이 넓어 인구밀도가 더 낮고, 훨씬 추운지방이었다는 것도 일조했을 것이다. 



허벌나게 걷고 허벌나게 추위속을 살아야 했을 것이다. 




요즘 폭염과 한파가 반복되지만, 기온이 사람체온 온도에 이르는 36도쯤되면, 사람이 하루 한끼를 먹어도 별달리 허기를 못느낀다. 

그러나 그렇게 한끼를 먹어도 겨울에는 곧잘 공복을 느끼고 하루 세끼먹을때가 많은 것이다. 


하루종일 난방을 콸콸 틀어서 여름처럼 지낸다면 모르겠지만, 대부분 서민들은 약간 춥게 하며 집에서도 잠바등을 입고 살 것이다. 

기본적으로 온도가 떨어지면 사람이 더 빨리 공복을 느끼고, 기본적인 체온 유지를 위한 신체대사량이 열량보존의 법칙에 따라, 그만큼 증가한다는 것을 뜻한다. 



고구려는 땅이 넓은데 산도 많어, 말이 있는 귀족이 아닌 화전민이라면 허벌나게 걸어야 했고, 허벌난 추위에 견뎌야 했을 것이다. 


요즘 현대엔 교통과 노동이 해결되어 웰빙문화가 유행이고, 오히려 돈을 주고 운동을 다니고, 식당에 버려지는 음식들이 꽤 많지만, 

그 시대 사람들이 무식하게 많이 먹었던게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그만큼은 먹어야 했던 것이고, 오늘날 사람들이 타임슬립해서 그 시대로 간다해도, 불과 3일정도 생활을 해보면 아마 그렇게 먹었을 것이다!



조선시대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별났던게 아니라, 세계 어느곳을 가도 저 시대엔 그랬을 것이다. 

의식주 생존 자체가 하루하루 고민이던 서민생활이었을 것이다. 

프랑스 서민들도 그저 감자나 쪄먹기 일쑤였다. 아마 많이들 먹었을 것이다!



로마 시대 귀족들이야 산해진미를 즐기기위해, 먹다가 일부러 토하는 문화가 있었다지만, 그러한 특권계층을 빼고, 먹는 것에 대해 큰 목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아낄수도 있게 된 것은 최근이나 들어서일 것이고, 사실상 어느정도 잘 사는 나라들에 국한된 일이다. 


우리나라 역시, 80~90년대까지만 해도, 그렇게 먹는 것을 꺼리는 문화가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문화생활에 대한 고민이 아니라, 생활자체와 먹거리가 고민이 사람들이 많이 있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러한 이들에 대한 긍휼과 나눔에 대해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기아대책] 국내결식아동 캠페인_유일한 한끼가 사라진 아이 
조회수 2,328,961회•2020. 11. 15. 
https://youtu.be/747rRz_hJcs






글을 마친다. [2021.1m.16d, 오후 19시 12분경, Charl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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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harlie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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