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알렉산더를 뛰어넘는 가장 위대한 중국의 황제, 후한 광무제(光武帝)- 3천의 기병으로 43만 대군을 격파한 전설같은 영웅담!
스타,연예,가벼운,코믹,농담 2022. 3. 17. 00:40중국에서 진나라가 천하통일을 하기 100여년전,
알렉산더 대왕이 4만여의 마케도니아 군을 이끌고, 20만 페르시아 제국의 군대를 격파해서 일순간 제국을 삼킨 일화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영화 알렉산더등을 통해서도 너무나 잘 알려져있다.
당시 페르시아는 약체도 아니었고, 다리우스 또한 대왕으로 불리며, 그 제국또한 전성기였는데 격파한 것이고, 서양의 많은 장군들이나 왕들에게 알렉산더는 넘사벽 같은 전설적 인물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의 어록등을 보면, 그가 위신이나 위계를 중요시하는 것보다 합리적 사고를 중시하였음을 느낄수 있다.
근데 동양에도 이에 비견될 황제가 있었으니, 서쪽에선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바쁘게 펼칠때 나타난 광무제이다.
<광무제의 전해지는 초상 그림>
한나라에 한고조 유방이나, 흔히 절대권력자로 나오는 한무제등이 많이 회자되지만,
제국을 건국한 초대황제들은 항상 위대한 추앙을 받으나, 당대에 건국을 하면서 치세까지 펼치는 왕은 좀처럼 찾기 힘들고, 2대나 3대에 가서 부흥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한고조 유방이후, 문제와 경제등 문경의 치가 그러했고, 우리나라에선 조선 이성계 건국뒤 손자인 세종때에 이르러 그러했던 것이다.
그러나 광무제는, 제국을 다시 복원하면서, 그와 동시에 태평성대한 정치를 펼치고, 민심을 바로잡았는데,
그 모든 과정들이 전광석화같이 군더더기가 없었던 것이다.
광무제는 기원전 6년에 태어나 서기 57년에 붕어했으니 예수님이 활동했던 시기,
로마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는 기원전 63년 9월 23일 ~ 서기 14년 8월 19일 생년!
즉.. 동서양에서 가장 위대한 황제들의 생존 시기가 겹쳤던 시기이기도 하다.
뭔가 좀 반짝했던 시기인지, 광무제 본인은 물론, 신하들도 다들 청렴하고 사리사욕이 없는 뛰어난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장나라 드라마로 알려진 띠아오만 공주나, 어의 등에 나타나는 황제의 모습은, 중국 드라마의 전형적인 형태일수도 있겠지만, 매우 젊고 유능하며 백성을 생각하며, 저잣거리 시찰에선 민중들과 격의 없이 어울릴 정도로 소탈하며 자유롭다.
하지만 요즘 중국의 시진핑 정권을 보면, 그는 아무래도 진시황과 같은 절대권력과 위엄을 추구하는 것같다.
실제로 중국 역사에서도 황제는 매우 절대적 위치를 차지했을 것이다.
창작 소설이나 드라마니까 나올수 있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할수도 있을테고, 물론 드라마고 픽션이니까 저런 이상적 황제의 모습이 나오는거지라고 말할수 있겠지만,
판타지 소설에나 등장할 법한 왕이지만,
그러나 저런 드라마에서 황제의 저런 모습을 보여준 롤모델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광무제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도 가장 위대한 황제로 손꼽히는 광무제임에도 불구하고, 사극등에선 어지러운 난세를 그린, 진시황이나 한무제, 초한지나 삼국지가 심심하면 제작되는 것에 비해서, 광무제는 의외로 찬밥이다.
2016년쯤 제작된 수려강산지장가행 등의 드라마가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에선 조조-유비-손권은 모두가 알고, 진시황이나 한무제는 대부분 알아도, 광무제는 후한을 연 시조격이지만 의외로 아는 사람이 적다.
기억을 더듬어 학창시절, 역사나 세계사 시간에서도 광무제는 그냥 스치듯 지나간 것이다.
사실 그의 전쟁중 기록은 알렉산더를 뛰어넘을 정도로 넘사벽 기록인 곤양대전등의 일화가 있었고, 정치나 나라의 경영에 있어서도 뛰어났는데도,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소재로 삼기에 재미가 떨어진다고나 할까?
아마 그런 이유일 것이다.
나무위키등에 잘정리된 그의 위대한 과업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모든 면에서 엄친아 황제였는지를 느낄수가 있다.
키는 7척 3촌으로 큰 키는 아니었지만, 아무튼 인물이 좋았다고 한다.
가장 유명한 것은 곤양대전이다. 이것은 왠만한 상상의 영화소재로도 다루지 못할만큼 전설적 기록들이다.
영화 300보다 더하면 더했던 것이다.
신나라의 황제를 자체하던 왕망의 43만 군대에 맞서 당시 광무제의 군대는 9천정도밖에 안됐다.
성이 포위되었지만, 그는 불과 13기의 기병을 이끌고 야반도주 성을 탈출하여 구원병을 모집한다.
그래서 끌고 온게 겨우 1만명..
삼국지에서도 그렇고 보통은 43만대 1만의 병력으로 싸울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그는 군사적 작전에도 뛰어났는데, 거짓정보 교란작전으로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불과 3천기의 기병을 이끌고, 43만 대군의 본진에 뛰어든다.
거의 가미가제 특공, 자살에 가까운 플레이이다.
그러나...~
그리고 이겼다!
이거는 17대 1 정도의 싸움이 아니라,
140대 1 정도도 간당간당했던 싸움이었던 것이다.
알렉산더는 5대 1의 싸움에서 이겨, 그토록 역사에 길이 남았는데, 희한하게 광무제의 이 쪽수를 아득하게 초월하는 전투는, 거의 모든 유사이래 역사기록을 뒤져봐도 단연코 가장 적은 쪽수로 가장 많은 대군을 격파한 가히 기네스북을 세운 사례일터인데, 사람들이 잘 모른다.
왕망의 적군들! 그의 군대가 쓰러뜨린 상대가 워낙 병법에 체계가 없던 종이호랑이 군대였다는 것도 있지만,
(=>그 많은 부하장수 부대들을 못 움직이게 놔두고, 달려오는 3천 기병을 왠 호승심인지, 총대장이 있는 본진의 병력으로만 상대해보겠다 하다가, 대가리부터 박살나자, 몸통이 뿔뿔히 흩어진 케이스)
자기들끼리 서로을 알아보지 못해서 같은 편끼리 싸우고 자멸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타고나 황제의 운이랄까? 엄청난 천운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 후로도 많은 전쟁을 하여, 다시한번 천하통일을 완수하였는데..
28세에 출사표를 던지고 일어나, 후한의 황제가 된 것이 31세무렵, 불과 3년만에 대업을 이루었다.
먼 변방 왕의 아들이었으니 나름 지역유지이고 금수저라면 금수저였지만, 황제의 자리를 놓고 볼때는 딱히 유망주로 거론될만큼 계승서열이 있던 것도 아니고,
사실상 별로 뛰어난 인맥이 넘치던 것도 아니고, 그 자신의 탁월함과 능력으로 가뿐하게 황제에 등극했다..
이건 뭐 만화책 베르세르크의 기린아, 그리피스도 아니고..
요즘 31세면, 9급 공무원만 합격해도 가문의 영광이고 자랑일 마당에, 갓 서른무렵에 별로 기반도 없는 젊은이가 황제가 되었으니, 대단한 일이다. (알렉산더는 25세쯤 페르시아 왕을 바르고, 대왕이 되었지만..)
황위를 자식으로 물려받지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 등극한 케이스에선 가장 젊은 사례이기도 할 것이다.
전쟁을 잘하면서도, 관용이 넘쳐.. 왠만하면 적들을 용서하였고,
오랑캐등인가 쳐들어왔을때는, 누군가 그들을 유인해 수몰시키면 압승할수 있다고 건의했지만,
너무 잔인한 방법이라고 거절했다고 한다.
이쯤되면 초한지의 범증이라면.. 망조가 보인다! 머리에 피도 안마른 놈과는 같이 대업을 도모하는게 아니다라고 혀를 끌끌찼겠지만.. 그렇게 적에 대해 사정을 봐주고 상대하면서도 여유롭게 완승하곤 했다.
결과가 나빴다면 할 말이 없는데, 하필이면 광무제였고, 그렇게 해도 잘만 이겼기에, 그냥 할말이 없는 것!
별로 모범적 병법이나 전술은 아님에도, 잘만 이겼기에 또 할말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터를 누비면, 으례 정사는 재상이나 신하들에게 맡기고,
와일드했을터인데도, 황제가 된 뒤에 학자 타입의 왕들처럼 근면서생, 모범공무원 노릇을 하며 열일!
신하들보다도 더 일찍 출근해 해가 질때까지 정무를 보았고, 그걸 즐겨서 뛰어난 행정가로서의, 또한 근면 황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뭐 공부는 공부대로 전교 1등이고, 싸움은 싸움대로 전교 1등인, 그런 사기 캐릭터인 것이다.
단 두명의 황후 정도가 알려진듯하다.
여색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여복은 있다.
일당백! 당대의 절세미녀인 음려화를 두번째 부인으로 얻어, 백년해로한다.
<광무제 와이프 음려화, 필자의 상상도다!>
며느리복도 좋아, 훗날 그의 아들 명제가 즉위할시 매우 똑똑한 조언과 사리판단을 하였고,
스스로 건의하여 외척들이 활개치지 못하도록 자신들의 친족을 중용하지 말것을 앞서 건의하고 조용히 살았다고 한다.
<착한 며느리의 상상도다!>
열국지를 보면 명재상들의 이야기가 상세히 나오는데,
춘추전국의 제환공을 보필한 관중이나 덜 떨어지고 주색잡기에 골몰했던 하찮은 경공을 보필하여 중원의 패자로 만든 안영등...
(그렇게 놀기 좋아했고 무능했던 제경공의 유일한 업적은, 안영을 재상으로 등용했다는 운빨좋은 인재등용이었다. 만약 보통 신하들이었다면, 흥청망청 나라를 말아먹을지도 모른다.)
난세이거나, 왕의 능력이 떨어지면 명재상들이 역사에 이름을 떨치는데..
광무제 시대에도 뛰어난 충신들이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광무제 본인이 군사면 군사, 경제, 정치, 행정등 모든 부분에서 똑부러지고 탁월했기 때문에.. 또한 별다른 큰 대사건이 안터지고 치세를 평온하게 이어나갔기 때문에,
의외로 오늘날 광무제는 인기가 없지만, 광무제의 신하들은 더더욱 알려진바가 적다.
어지러운 난세에 등장했지만, 신화시대나 요순시대에나 전해질법한, 공정하면서도 엄격하면서도 자비로운, 온 백성들에게 칭송받으며 한 시대를 살다간 인물, 비전으로 가득한 뛰어난 명군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던 것이다. 마치 원래부터 황제가 되기위해 준비된 것처럼, 뛰어난 정책들로 난세에 굶주리고 어지럽던 민생을 안정시킨다.
수많은 중국인들에게 한나라는 진나라의 폭정이후, 최초의 제대로 들어선 한족의 통일왕조였고, 한족들의 정신적 뼈대이기도 하지만, 그 한나라 시대의 황제들중에서 파란만장하면서 가장 빛났던 Top of The Top! 그런 불세출의 인물을 한명만 뽑아보라면, 난세의 영웅이면서, 태평성대의 경영능력까지 모두 한몸에 갖췄던.. 바로 광무제일 것이다.
각종 제식과 축성을 반대할 정도로 검소했으며, 백성들의 세금을 획기적으로 감면하고,
한고조 유방처럼 개국공신들을 토사구팽하지 않고, 모두 한자리씩 주어 논공행상을 잘한 황제로 알려져있다.
단 그의 치세에는 아무도 광무제에게 이빨을 드러낼 제후가 없었지만은, 몇대가 지나서 이들이 세금을 과하게 걷고 사병을 늘려, 한나라 정실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자라나게 되는데 이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그 자신이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에.. 내가 지금 별 문제없이 지금 제도와 체제속에서도 잘 나라를 운영하고 있으니, 내 자손들도 나처럼 잘하겠지라고 성급한 일반화를 한게 광무제의 큰 오산이 아니었던가 싶다.
이세돌이 바둑을 잘둔다고 해서, 자기 자식들도 당연히 자신만큼 잘하겠지하는 뭐 그런...!!
기타로 도참사상등을 중요시 여겼는데, 이게 광무제 당시엔 별 문제가 없었다고 할지라도, 후대에 이르러, 혹세무민과 어지러운 세상을 일으키는 흠으로 남는다.
뭐.. 종교권력이란게 그렇지 않은가.. 도교는 물론, 불교의 신돈이나, 혹은 기독교 목사가 정치에 참여하거나, 혹은 박근혜와 최태민... 범사적으로 종교가 카이사르의 사업에 관여하면, 난세적 현상들이 잘 나타난다.
황제가 된 뒤에도 오래된 친구가 놀러왔을때, 야자를 트고, 친구가 황재의 다리위에 발을 올리고 잠잘 정도로 격의 없고 소탈한 황제였다고 한다.
법의 집행에 있어서 아무튼 사람을 최대한 죽이지 않는 관용주의를 표방했는데..
그럼에도 왕족이라고 편들어주지 않고, 황제 본인이 사냥을 마치고 성문 출입시각에 늦어 문지기 책임자가 국법대로 들여보내주지 않아, 다른 곳으로 되돌아간적이 있으며, 그에게 오히려 상을 내렸다.
삼국지에서 조조가 원칙대로 북위교위를 할때 왕족을 심판한 것은 익히 알려져 있고,
영화등의 대사에서 헌제에게 그대가 한고조 유방이나 역대 위대한 황제들처럼 블라블라 뛰어났다면, 나는 그저 충신으로 남았을 것이란 대사가 있었지만...
당시 삼국지 시대의 황제가 광무제 정도의 뛰어났다면, 오늘날 삼국지 소설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의 세종대왕도 위대한 대왕으로 남았지만, 그의 실책중 하나라면, 부민고소금지법을 만들어, 오히려 신분간의 차이와 그에 따른 횡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여, 시대가 흘러 큰 폐단으로 나타나는데..
아무튼 그보다 1300년전의 광무제는 타인에겐 관대하고, 자신에겐 엄격했지만,
법집행에 있어서는 귀족이나 서민이나 노예나 신분의 귀천없이 똑같이 처리하도록 하는 원칙주의자였다고 하니,
그의 그릇이 얼마나 대단한지 볼수 있다.
황제의 권위에 크게 집착하지 않아, 신하들과 토론이나 언쟁도 많이 한듯하고, 몇몇 신하들은 황제의 말에 토를 달고, 심지어 일화처럼 성문 지키는 벼슬아치도 광무제에게 개기곤 했지만,
허허 웃으며 "오, 너 원칙대로 잘한다, 엄지척! 상줄께..." 그런 식으로 너그럽게 넘어간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군사적 능력이나 뛰어난 행정적 수완에는 조조나 제갈공명이 유명하고, 그리고 인덕에는 유비가 유명하지만,
광무제는 그 모든 것을 갖춘.. 가히 치트키를 쓴 사기 캐릭터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정말 찾아볼수록 까도까도 미담만 나오는 황제가 그였던 것이다.
요즘 시간을 짬내서 드러누워 태블릿으로 짬짬이 고우영의 십팔사략 만화를 읽어보고 있는데,
광무제 편의 소개를 봐도, 그가 얼마나 대단한 황제였는지를 볼수 있다.
아마 중국의 그 이후의 왕조에 들어선 모든 황제들이 꿈꾸는 가장 위대한 군주상이 그였을 것이다.
십팔사략 6권, 광무제 유수의 일대기 파트편을 간략히 소개!
사기캐릭터에 가까운 지방 변두리에서 황제로 출세하기까지 그 과정이 엄청난 천운과 전설적 과업들을 일궈내며 전광석화처럼 지나간다.
그는 십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뛰어난 정치가도 아니고,
백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뛰어난 왕도 아니었고,
천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위대한 황제였던 것이다.
말 그대로 광무제(光武帝)!
전쟁에선 전설적 도시괴담으로 남을만큼, 뛰어난 군사적 전략과 무(武)를 보여주었으며,
황제의 자리에선 별과 같이 광(光), 찬란할 정도로 빛났던 것이다.
세습왕조의 한계상, 아버지가 성군이어도 자식이 똑같이 유능하고 뛰어나기는 힘들 것이며,
애초 광무제도 지난 황제의 자식이 아니라, 변방의 유능한 걸물로써 출세했지만,
그의 사후 후대 황제들, 그의 자손들이 광무제처럼 뛰어나기는 커녕, 역시나~ 주색잡기에 골몰했으니,
왕조의 흥망성쇠의 근본적 원인은,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이를 새로뽑아 왕을 뽑는게 아니라, 무조건 자식이 못났던 잘났던 자식새끼에게 그대로 물려주는 세습왕조 시스템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선거를 통해 뽑아도, 그렇게 정치가 최선이다시피 돌아가지는 못하는데.. 혈통주의의 문제는,
아버지가 뛰어나도 피를 이어받은 자식이 망난이일수도 있지만, 그런 자식이 황제자리에 앉으면, 국가가 머리부터 어지러워지니 잘 되기가 참 힘든 것이다.
오늘날도 광무제 리더십 어쩌고 저쩌고 분석할수도 있지만,
결국 그런 위대한 리더는 타고난 재능일 것이다. 그리고 천운을 타고나야 한다.
곤양대전 당시, 43만의 대군에 성이 함락되느냐 마느냐 생사의 기로에서, 불과 13기의 기병을 이끌고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야반도주하던 시절 광무제 유수는 그 자신이 황제가 될줄은 스스로도 생각못했을지 모른다.
3천의 기병으로 돌진하던 순간에도 그러한 대군을 이길것이라 생각했을까?
천운도 나름 따라줬는데, 당시 광무제가 구원군을 청해본다고 탈출한 이후, 성의 9천 병사들은 원래 항복하려고 했다고 한다.
근데 왕망의 43만 대군이.. 항복을 받아주지 않을것임, 너희다 죽일것임! 이런식으로 응대했고,
어쩔수 없이 배수진치듯 열심히 죽기살기로 싸우는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질수 없던 것이고,
그리고 광무제가 원군을 이끌고 와서 대승할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왕망의 군사들이 관대하게 항복을 받아주었다면, 광무제가 이끌고 온 원병들은 허사길!
낙동갈 오리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글을 마친다. [2022. 3m. 17d, 밤 00시 40분, Charlie]